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데드라인이 걸려있는 일을 할 때, 전처럼 마음을 졸이며 자신을 다그치지 않는다. 심지어 일과 관계없는 일을 일부러 하기도 한다. 산보를
하거나, 책을 읽거나.
이번에는 장회익의 "공부도둑"을 읽는다. 70살 할아버지다. 글 잘쓰셨다. 읽다보면 미뤄두었던 문제가 가끔 떠오른다. 어려운 문제들이다.
결론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편의에 따라서는 안된다. 아래는 좋은 답안중 하나라고 생각한다.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.
- .... 그런데 내게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. 내가 이 시험과 관련하여 하느님께 어떻게 기도를 드릴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. 나로서는 이번
대학입시가 매우 중요한 관문이 되는데, 여기를 통과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릴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. 내가 합격하는 것이 좋기만 한 일이라면
그렇게 해달라고 해서 안 될 것이 없겠지만, 내가 합격하면 누구 하나가 떨어져야 하는데 나를 붙여달라는 것은 누구 하나를 떨어뜨려 달라는 것과
마찬가지 이야기가 아닌가? 내 앞에 빵 조각이 하나 있는데 내가 먹으면 동생이 먹을 게 없고, 동생이 먹으면 내가 먹을 게 없을 때 나는 내가
먹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릴 것인가? 결국 나는 공정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는 길밖에 없었다. 상대가 나보다 더 적합한 사람인데 내가 합격한다면
이는 옳지 않은 일이니 단지 누구 하나 실수해서 순서만 뒤바뀌지 않게 해달라는 것 이상 더 드릴 기도가 없었다. (장회익-공부도둑
중에서)
하지만 동생도 빵을 줄 수 있는 집안이었겠지. 응?
- 나는 한 개체로서 10년, 20년 혹은 60년, 70년 전에 출생한 그 누구누구가 아니라 이미 40억 년 전에 태어나 수많은 경험을
쌓으며 살아온 온생명의 주체이다. 내 몸의 생리 하나하나, 내 심성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두 이 40억 년 경험의 소산임을 나는 알아야 한다.
그러니까 내 진정한 나이는 몇 십 년이 아니라 장장 40억 년이며, 내 남은 수명 또한 몇 년 혹은 몇십 년이 아니라 적어도 몇 십억 년이
된다. 내 개체는 사라지더라도 온생명으로 내 생명은 지속된다. 지금 나는 오직 ‘현역’으로 뛰면서 온생명에 직접 기여할 기회를 누리는 존재가
되어 있다. 그러나 좀더 큰 의미의 생명 그리고 좀더 큰 의미의 ‘나’는 앞으로도 몇 십억 년 혹은 그 이상으로 지속될 온생명이 된다.
(장회익-공부도둑 중에서)
전에는 이런 글을 읽고는 감동먹고 뻑가서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. 라고 중얼거렸었는데, 어째 지금 떠오르는 적절한
형용사는 "나이브(naive)" 다. 흐흐.
앞의 두문장은 인터넷으로 발견한 문단이었다. 책으로 읽어보니, 저 앞문장의 바로 다음에는 이런 글이 이어진다. 이게 더
그럴싸해보인다.
- 지금 생각해보면 이 얼마나 웃기는 일이냐? 사실 순서가 좀 바뀐들 그게 뭐 그리 중요한일이냐? 지금 나는 오히려 순서가 좀 많이 바뀌어
어느 한 대학에만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도 한다. 물론 당사자에게는 억울한 일이겠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그것이 또한 좋은
일이고, 당사자 자신도 하기에 따라서는 더 좋은 길을 찾을 수도 있다. 그런데도 내가 기껏 이 정도 일로 기도를 드렸으니 당시 하느님이 이
기도를 듣고 얼마나 웃으셨을까?
공부도둑1 (http://jinto.pe.kr/soocb/951)공부도둑3 (http://jinto.pe.kr/soocb/954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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